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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Travel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나의 호주 여행기 - 두번째날 (시드니의 해변들)


2008/09/08 월요일

눈을 떳을때 버스는 이미 회사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4년동안 거의 매일같이 반복한 탓에 이제는 버스에서 한시간 가까이 잠을 자다가도 내가 하차할 곳에서 눈이 떠진다. 수원 사업장은 소규모의 도시라고 해도 될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버스 터미널과 약국과 병원 상가 건물이 있으며, 몇개의 은행, 도서관에서는 책과 DVD를 대여해 준다. 버스는 회사내를 돌며 몇번이고 정차해서 곳곳에 사람들을 뿜어내고는 다시 달아나듯이 달려갔다.

나는 분명히 눌려있을 뒷머리를 오른손으로 흝으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아침햇살이 나의 눈을 찌르는 듯했다. 살짝 눈을 찡그리며, 내가 일하는 40층 높이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검은색 네모 반듯한 건물이 파아한 하늘을 흑백톤으로 비춰내고 있었다. 벌써 이곳에서 일한지 4년째.. 하지만 나는 한번도 고개를 들어 건물을 감상한 적이 없었다. 아니, 감상할만한 마음에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같이 전혀 여유가 없는 무표정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아랑곳 하지않고 동시에 나를 스쳐 지나간다. 간혹 힐끗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는 찰라에 그는 자신의 시선을 정면으로 급히 수정하고는 다시 바쁘게 사라져 버렸다.

'무관심'

어제밤 한국에 와서 처음 느꼈던 느낌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집에 오기까지, 나는 다시 무관심에 익숙해져야 했다. 케리어를 찾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사람들은 나에게 바싹 말라버려서 퇴퇴하게 버려진 식빵만큼의 관심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순간 다시 내가 도시 속의 조그마한 존재로 돌아갔음을 알 수 있었다. 시드니와 멜번에서 혼자 9일간의 시간을 보냈던 나였지만, 오히려 한국에 와서 외로움을 느낀다는것은 아이러니한 경험이다. 그곳은 나에게 낮선 도시였고, 모르는것 투성이었지만, 사람들은 내가 곤란해 할때마다 나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을 걸어주곤 하였다.

'이방인에 대한 배려겠지...'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묘하게 달콤했던 사과와 같은 그 느낌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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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31 일요일


709 ON GEORGE 의 6 room


이틑날 08:10분, 내가 일어났을때 이미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제밤 내가 잠들때 영국인 가이 한명이 들어왔다 나갔던것을 기억하는데, 밤사이 모두들 자고 아침 일직 여행을 간 모양이다. 나는 아직 덜뜨인 눈을 부비적 거리며, 아직도 통증이 가시지 않은 다리를 천천히 침대 사다리로 옮겨서 2층 침대를 내려왔다.

"으헛... 쿵"

사다리 봉에 널어놓은 수건에 미끄러지면서 바닦에 엉덩이를 재대로 찧었다. 아침부터 민망스러웠다. 미끄러진 수건 아래에 은색 반짝이는 물건이 보였다. 아픔으로 엉덩이를 주무르며 그 물건의 촛점을 맞춘 순간 나는 방에 아무도 없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널부러진 콘돔들..

어제밤, 그러니까 축복받은 토요일밤, 아무도 숙소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이 방 사람들은 나와같이 여행을 온 목적이 아닌것 같았다. 방의 불을 켰다. 방은 새로지은 건물답게 벽이며, 침대며 깔끔했지만, 너져분한 물건들로 인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했다. 방구석에 무언가 꾸러미가 있었다.

I AM FOR FREE


FREE에 진하게 가 있는 밑줄들이 이사람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는것 같았다. 꾸러미 안에는 감자와 양파 소스와 함께 갖은 요리 재료들이 있었다. 코끝이 살짝 찡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외치는 "FREE".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제부터 Free 라는 단어가 이렇게 인상이 깊은것일까...
 시드니 현대미술관 앞의 "This is Freedom"을 봤을때도 나는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온 알록달록한 쿠키를 한조각 베어물은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나에게는 이 단어가 그리웠나보다..

외국에 와서 고작 하룻밤을 자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나는 지하에 있는 공동 식당으로 내려가 어제밤 사온 캐밥을 적당히 씹어 넘겼다. 설거지를 하고나서 식당을 나가는 순간 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동양인을 볼 수 있었다. 내 나이또래의 얼굴에 짧은 단발머리와 까만 뿔테를 쓰고, 전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먹는것 조차 귀찮다는 표정으로 셀러드를 먹고 있었다. 일본이나 중국인 보다는 한국인에 가깝게 보였다. 어제 하루 질리도록 서양인만 마주쳤던 나는 잠결에 호기가 생겼다.

"Hi~, Where are U from?"

중학교 교과서에 있는 문장을 토씨하나 안바꾸고 발음했다.

그 여자아이는 먹는것도 귀찮은데 넌 머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Japan 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인인것을 정확하게 집어내었다. 그 아이는 벌써 2달동안 호주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sydney 에서만도 한달을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무척 부러울 뿐이었다. 이야기 내내 그녀는 셀러드를 먹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맨리 비치와 왓슨베이중 어느곳이 좋았냐는 말에 그아이는 맨리비치가 좋았다고 대답하며, 멜론 조각을 입안에 넣었다. 말을 하는 그녀의 입 사이로 녹색이면서도 노란빛의 맬론즙이 보였다. Sydney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묻자 그 아이는 "백화점"이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사과를 아작아작 씹기시작한다. Oh My... 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카메라를 매고 백팩을 나섰다.

앙큼한 표정의 카운터 직원 ㅎ


이른 아침 숙소 바로 앞의 GEORGE st. 풍경


어제 너무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나는 오늘 떠날 Activity 를 예약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여행정보나 책에는 수많은 관광업체들이 Activity 를 운영하고 있고, 언제나 전화를 걸면 예약하고 쉽게 떠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예약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찾는것이 저렴하다는 말에 나는 아무 Activity 도 예약하지 않고, 이곳에 왔었다.
공중전화기에 돈을 넣고 미리 알아둔 여행사의 번호를 돌렸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른곳에 전화... 또 다른곳에 전화...

내가 잊고 있는것이 있었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아무리 관광사라고 해도, 호주에서의 일요일은 휴일 이었다. 결국 나는 예정에 없이 혼자 하루를 혼자 여행으로 보내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한국에서 열심히 찾아본 여행 스케줄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오늘의 여행 코스를 잡을 수 있었다. 오늘은 호주 근교의 해변가를 배를 타고 돌기로 했다.
시드니에는 daily tripper 라는 것이 있다. 이것을 구입하면 하루동안의 트랩과 지하철, 무엇보다 근교로 가는 배편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16호주달러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이 모든것을 이용할 수 있었다. (완전 좋다!!!)

그런데 어디서 사지 .... -_-;;;

내가 본 정보에는 어디서 판다는 이야기 까지는 나와있지 않았다.;; 일단 가까운 근처에 Central Station 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central station

가는 길에 행인들에게 daily tripper 에 대해 물어도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정작 여기 시민은 별로 이용하지 않는 티켓인듯 했다. 하긴, 여행객들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Central Station 의 기차표를 파는 창구에서 해당 티켓을 팔았다. 나는 마음이 놓여서, 어제는 그냥 지나쳐 갔었던 Paddys Market 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Paddys Market 에서 잡화점을 하시는 한국인 할머니


Paddys Market 에 있는 음료수 가게 - 완전 싸다


휴대폰들..아쉽게도 Samsung 제품은 없었다. 호주는 노키아가 장악하고 있었다.


Paddys Market 은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 였다. 없는게 없었다. 상인들은 거의가 중국인 들이였다. 물건값은 호주 어디보다도 쌌고 기념품 같은 것들도 여기서는 1/5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2층은 중형 마트와 같은 분위기여서, 싼것을 원하는 소비자와 질좋은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 이름이 Market City 인가보다. 나는 지도를 보는데 필요한 1$ 나침반을 사서 가방끈에 달았다. 나름 잘 어울리지 않는가?~ㅎ

1$ 나침반


차이나 타운 입구


어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정신없는 상태에서 지나쳐서 몰랐었는데 Paddys Market 의 바로 건너편에 차이나 타운 입구가 있었다. 이렇게 큰걸 못보고 지나치다니.. 여행은 확실히 두리번 거리는 맛이다.

두리번 두리번 (-_- )( -_-)

그날 하루종일 나는 완전 촌스럽게 Sydney 곳곳을 두리번 거리며 다녔다.

Sydney 의 지하철


지하철이 2층이다?!!


입구가 위 아래로 나뉘어 있다


지하철 내부

Paddys Market 에서 Daily Tripper도 있겠다. 가방에 달아놓은 귀여운 나침반도 있겠다. 나는 든든한 마음으로 Circular Quay 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러 플렛폼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들어오고..(무척 세련되게 생겼다) .. 지하철이 2층으로 되어 있다. 나는 처음 지하철이 들어올때 혹시 여기 지하에도 플렛폼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입구에 들어서니 위 아래로 층을 나누는 계단이 보였다. 승객들이 앉아서 갈 수 있도록 좌석을 많이 배치한 배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제밤 공포의 보타닉 가든에서 Central Station 까지 지칠대로 지친 무거운 다리를 끌고 2시간을 걸어서 도착했던것을 생각하면, 지하철을 타고 10여분 만에 Circular Quay에 도착한 것은 정말 감게무량아지 아닐 수 없었다. 어제는 정말 힘들었다. 아마 앞으로의 호주 여행중 그렇게 힘든 일정은 없을것이라고 확신한다. 역시 문명의 이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걸 이제 알았냐 -_-a)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힘든 일정을 즐기는 나였다.

여행중 남는것은...
사진과,
힘들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었던 기억들이었다.

Circular Quay에 정박해 있는 Ferry 의 모습


Sydney의 갈매기


Harbour Bridge


선착장


총 6개의 선착장이 있다. 3번 포인트에서 맨리비치로 가는 패리를 탈 수 있다


선착장의 패리 시간 전광판

Circular Quay 에는 총 6개의 선착장이 있었고 각 선착장마다 갈 수 있는 곳이 달랐다. 나는 아침에 일본 여자아이가 추천한 맨리비치를 먼저 찾아가보기로 했다. 매 시간대별로 Ferry가 다니고 있어서 나는 어렵지 않게 첫번째 목적지인 맨리비치로 향하는 배시간을 찾을 수 있었다. 선착장 앞에 붙어있는 Time Table에는 1시에 맨리비치행 Ferry가 출발한다고 한다. 시간이 벌써 12시를 넘겨서 나는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저렴한 먹거리를 찾아 가게를 두리번 거리던 중 나는 전광판에 Manly 행 Ferry가 12시반에 출발한다는 표시를 볼 수 있었다.

'Time Table과 다르잖아..;;'

나는 투덜거리며 고픈배를 움켜쥐고 Manly 행 Ferry에 올랐다.

멀어지는 Circular Quay


배 위에서 본 하버브릿지


It's me~!


오패라 하우스 - 언제봐도 멋지다









Manly Harbor



Manly Ferry Time Table

Manly Harbor 로 이동하는 뱃길은 많은 볼거리가 있었다. 아직 추운 봄 날씨(10℃)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요트를 타고, 혹은 수상 비행기를 타며 Sydney 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직 어제밤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 역시 바다에서 보는 기분은 또 달랐다. 배 안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내가 이 시즌에 가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동양인은 정말 극히 일부분 이었다.(그 일부분중 대다수는 중국인 이었다.) Manly Beach 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Time Table 을 확인했다. 여행기에는 배가 일직 끊기니 조심하라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걱정과 다르게 배는 밤 11시45분까지 운행하고 있었다.



먹을것 앞에 모인 갈매기들


이렇게 보면 이쁜데...


후랜치후라이 봉지를 들고 달아나고 있다. 너희들은 앞으로 "닭매기"다 -0-


맨리 비치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
.
.
물론, 밥집을 찾는 일이었다. -_-; 그것도 저렴한... 남은 일정이 아직 많은 만큼 아직은 저렴하게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지도를 보며 맨리에서의 여행경로를 대강 훓어 본 후 나는 여행 경로를 따라 걸으며 밥집을 두리번 거렸다. 거의 모든 가게들이 10$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헝그리 잭(버거킹)을 발견하였는데 한국과 다르게 KFC나 맥도널드 보다 헝그리잭이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역시 호주는 쇠고기가 저렴한것 같다.

햄버거를 take out 해서 해변가로 나왔다. 이렇게 혼자 먹는것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운치는 눈치없는 갈매기들에 의해 깨져 버렸다. 이곳의 갈매기들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갈메기를 피하는 눈치였다. 내가 햄버거를 먹으로 후랜치 후라이를 바닦에 놓자 이녀석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어서는 내 눈치를 보다가 봉지째 들고 도주를 했다. 흘...
그날부터 나는 이곳의 갈매기들을 "닭매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ㅡㅡ;

Manly Beach





서퍼들과 닭메기와 놀러온 연인들을 구경하며, 한가로운 해변을 거닐다가 나는 밀려온 나무가지로 백사장에 글씨를 썻다.

HELLO SYDNEY!

공포영화 스크림에서 따온 대사를 적어보았다. ㅎ 물론 여기는 맨리 였지만 ㅡㅡ;;
(마치 외국인이 수원에 와서 "하이 서울~!"을 외치며 사진찍는것과 같은것이다 ;;;)
내가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하며 혼자 사진을 찍고 좋아하고 있는데, 뒤에서 걸죽한 목소리가 들렸다.

"May I take a picture of you?"

한 노신사분이 할머니와 데이트를 즐기면서 나에게 사진을 권했다.
아.. 정말 감사하고 ... 부끄러웠다 -_-*


사진을 찍어주시고 유유히 가시는 노신사분


그렇게 사진을 찍어주시고는 나에게 인사를 하며 할머니와 해변을 걸어 유유히 사라지셨다. 이방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작은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넉넉한 마음가짐이 나에게는 무척 크게 느껴졌다. 어제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낯선곳에서의 외로움'이란 녀석은 아주 조금씩 희석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