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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Travel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나의 호주 여행기 - 0번째날


2008.09.08 월요일


이상하리만큼 일찍 눈이 떠진 아침이었다.
얼굴을 부비며 핸드폰의 폴더를 였었을때 시계는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막 잠을 깬것치고는 이상하리만치 머리는 맑은 상태였다.

'아직 알람은 울지 않았다.'

조금 더 늦장을 부려볼까 고민을 하던 나는, 흘흘털어 일어나서는 동이 터오는 새벽길을 따라 출근버스를 타러 집을 나서고 있는 길이였다.

"사당역에서 우회전이요"

여느날과 같이 나는 택시기사에게 기본요금 정도가 나오는 나의 목적지를 외쳤다.
힐끔 뒤를 돌아본 택시기사의 얼굴에 달갑지 않은 표정이 스쳐지나간다.
나는 이럴때 무표정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곳은 사당역과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지만, 이상한 버스 운행으로 마을버스를 두번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나에게 그것은 은근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택시기사는 다시 운전대를 고쳐 잡고서는 언제 그랬냐는듯, 액셀을 힘주어 밟았다. 택시는 나와 나의 아직 가시지 않은 졸음을 싣고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여느때와 같은 동네 풍경들이 지나간다.
택시가 후미진 뒷골목을 지날때, 어제 밤 장사를 망친 술집의 호스트는 오늘도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아침의 햇빛을 보며 담배만 빨아대고 있었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바쁘게 길을 걷고 있었고, 항상 이시간에 출근하는 낯익은 얼굴들도 보인다.

'저 사람들은 내가 자신을 낯익어 한다는 것을 알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건물들이 아주 정확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 있는 모든것들이 변함없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그것은 여느때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가 변했다..

나는 택시 뒷자석 의자에 깊숙히 몸을 묻고, 바깥풍경을 촛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있는 것은 여느때와 같았던 그 풍경이 아니었다.
어제.. 그래, 바로 어제 본 시드니의 아침풍경이 회색건물들 사이에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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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금요일

정말 이런걸두고 극적이라고 말하는거다.
저녁 7시 비행기를 타기위해 오늘 오전에 보고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오전 10시경에 조금씩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두달간 의미없는 작업이 될까봐 노심초사 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듬고, 내가 삽입했던 'debugging sentence' 들도 제거해야 하지만, 이는 90% 이상 프로젝트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속으로 나는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남들보다 긴 휴가를 낸것도 부족해서 금요일 오후반차까지 신청해놓은 나는 편한 심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로써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를 수 있을것이다.

오후 12시..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길에 이발을 했다. 생각해 보니 두달동안 이발도 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마음이 급했다. 지치도록 일한날은 지치도록 즐기고 싶었다. 그래봤자 친구와 술자리나, 집에와서 혼자보는 영화가 다일테지만..
그에 반해 이번 호주 여행은 나에게는 정말 파격적이었다.
2달전.. 팀이 변경되고 [쉴때쉬고 일할때 일하자] mind 를 가진 상사를 만나서, 여름휴가를 철에 맞춰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달동안 휴가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과장님이 툭 던진 한마디... '호주나 한번 가보지 그래.' 가 결정적이었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여행계획을 짜고, 여행 전에 프로젝트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지난 한달은 정말 지루하고 고된 시간이었다.
거기에 이번 여행을 위해 중고 DSLR을 구입하고, 공부하기까지.. 모든일이 한달 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비교적 잘 컨트롤 되었고, 마치 나의 주변 모든것이 나에게 호주로 여행을 떠나라고 말하는것 같이 전개가 되었었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싸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옷은 미리 빨아 두었고, 몇일전 작성한 준비물 리스트의 물품은 모두 갖추어 졌다. 어제 막 배송온 여행 상품 몇가지를 챙기며, 급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하지만, 모든것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일까? 얼마전 속초여행때 챙겨갔던 썬글라스가 보이질 않는다. 썬글라스 없이 호주가 왠말이랴~
집안을 발칵뒤집게 한 썬글라스는 결국 어머니 차에서 나왔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물건을 찾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래서 내방은 깨끗한 편은 아니어도,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항상 내가 아는 위치에 둔다. 다음번엔 어제 빨아둔 옷이 문제였다. 심각하게 물기가 남아있었다.
한시간을 말리다가, 더이상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 나는 비닐봉지를 이용해서 젖은 옷들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급하게 준비한것 치고 이정도면 괜찮은거 아냐? 자.. 출발하자'

나는 속으로 나에게 안심시키며, 케리어를 들고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섰다.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올림픽 대로는 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길이었다.
전에는 이 도로에 이렇게 나무가 많은지 몰랐었다.
자주 운전하고 다니는 길이었는데, 그동안 나는 차선과 내 앞과 옆차들만 보고 달렸었나보다.
아니, 네비만 보고 운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피식.. 나는 싱겁게 한번 웃고는 카메라의 on 버튼을 밀어재꼈다.
해가 조금씩 지고있는 서울의 하늘은 공항까지 이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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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 가는 내내 나는 아직 다 외우지 못한 DSLR의 메뉴얼을 읽고 있었다.
버스안 방송이 카메라와 메뉴얼 사이에서 바쁘게 오가던 나의 눈길을 차창밖으로 향하게 했다.
멀리 인천공항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 정말 출발이구나..'

인천공항의 하늘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일 아침은 시드니에서 맞이 할 수 있겠지..'

버스가 그디어 승차장에 도착하고, 나는 조금은 흥분되고, 조금은.. 아니 많이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공항 출국장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