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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Free Thinking

우리는 누구나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 기본적으로는

회사 동료가 보내준 좋은글

마음에 와 닿아서 이곳에 남겨 본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할 수 있는 평온을 주옵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옵시고,

그 둘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는 누구나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 기본적으로는,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누군가를 부럽다 말하기 전에 혹 노력해봤는가.

지금의 나, 지금의 내 생활을 바꿔보려 노력해봤는가.

머리로만 말고 실천해 노력해봤는가, 정말 최선을 다해.

 

너무 쉽게 불평하고 포기하고 타인의 삶을 부럽다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나 또한 사람인지라, 나와 출발선 자체가 다른 것 같은

사람들을 볼 때면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백 걸음 달려야 겨우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한두 걸음이면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 그래도 나는 그런 불평도 일단 백 걸음을 다 달린 다음에나 할 수

있는 것, 그래야 괜한 투정으로 비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어쩌면 조금 오만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죽을 만큼 노력해서 이룰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노력만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라는 아직 젊은, 아니 아직 어린, 그래서 오만했기에

가능했던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 내가 나로 태어난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도 세상엔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찾아오는 재앙이 있다는 것.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그저

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재앙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도 세상엔 분명

존재하고 그것에 내게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지나칠 만큼

휘청거렸다.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다는 것이, 평생 해독제를 찾아 헤맸으나 처음부터

해독제 따위는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 듯 허탈했고, 그 허탈함 안에서 나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끙끙거렸다.

 

우리는 누구나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고?

내가 헛소리하면서 살았구나. 인생은 그저 랜덤일 뿐이었는데, 나의 의지나

노력 따위와는 상관없이 랜덤으로 축복과 재앙이 배정되는데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치열하게 사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끙끙거리던 어느 날, 멍하니 드라마만 보고 있던 내게 불쑥

찾아와준 말이 있었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할 수 있는 평온을 주옵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옵시고,

그 둘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한다. 내게 찾아온 불행 앞에서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만 원망하느라 바빠서, 내게 선택권이 없는 것들만 바라보며

자기 연민 떨어대느라 바빠서.

 

우리는 누구나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 기본적으로.

,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내게 선택권이 없는 것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조차 다 바꾸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만 원망하며 사는 바보가 되지 않기를.

나는 그런, 조금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강세형 지음, 쌤앤파커스, p.218~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