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Free Thinking

상수동, 통의동


나에게도 인사동은 고딩때의 추억이 깃든 장소였다.
교회에서 친한 형의 따라 갔던 인사동의 고풍의 찻집은 나에게 여유와 멋으로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삼청동으로 옮겨갔고, 요즈음에는 삼청동에 가도 예전처럼 마음의 위안을 되지 않는다. 가계는 늘고 맛있는 집이 자꾸 생겨나는데.. 나는 마이너리티 기질이 있는것일까?

하지만 여기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사람이 있는걸 보면서 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것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문 : http://cynews.cyworld.com/Service/news/ShellView.asp?ArticleID=2008102809411356211&LinkID=788


어느 한 지역이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 동네는 고유의 매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사람들이 몰리게 된 그 동네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체인점으로 점령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홍대 앞, 삼청동은 가지 않는다. 대신에 그 옆 동네 상수동, 통의동에 간다.


“요즘 누가 삼청동엘 가니?”라는 말이 나온 건 꽤 오래전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삼청동은 멋을 좀 안다는 이들만 찾던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 뜨내기들의 집합 장소가 되어버렸다. 가을이 되면 ‘진선 북카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는 그 기억이 마치 잘못된 착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렇게 사람 많고, 이렇게 무질서한 공간에서 내가 과연 가을의 정취를 느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것이다. 때로 많이 변해버린 현실은 잘 자리 잡은 추억조차 뿌리 뽑아버릴 때가 있다. ‘제2의 인사동’이 되어버린 지금 삼청동의 모습이 딱 그러하다. 나에게 삼청동의 기억은 이제 없는 것이다.
대신 언젠가부터 나는 통의동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복궁의 서문 바로 맞은편(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동네가 나는 너무 좋다. 아직은 상업지구가 아닌, 주택가로 남아 있는 이 동네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한옥을 개조한 갤러리가 멋스럽고, 인적이 없고 조용한 가운데 곧게 뻗어 있는 은행나무들도 시원시원하며, 지금은 어디엘 가도 찾아볼 수 없는 재래식 주택들이 그렇게 고귀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서울 시내의 모든 구석구석이 재개발되었기 때문에 때로 ‘개발되지 않음’은 이렇게 골동품의 가치를 뿜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동네 통의동이 소중하다. 적어도 이 동네엔 패거리처럼 떼지어 다니는 ‘출사팀’이 아직 없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른다.

통의동 파출소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가을에 유독 멋이 난다. 오죽하면 경복궁 서문을 ‘영추문(迎秋門) - 가을을 맞이하는 문’이라 지었겠는가. 경복궁 동문이 ‘건춘문(建春門)- 봄을 세우는 문’인 것과 비교해봤을 때, 이곳의 가을 정취는 유독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이 동네 갤러리는 (마치 서교동 카페처럼) 한옥을 개조한 곳이 많다. 그나마 서교동 카페는 완전히 재래식 주택까지는 아니지만, 이 동네 집들은 정말 옛날 한옥이 대부분인데 그 공간을 갤러리로 개조했다니, 엄청나게 조심스러웠을 것만 같다. 뒷마당이 예쁜 대림미술관은, 이 동네에선 그나마 현대식 건물에 속한다. ‘Jean Art Gallery’의 지붕은 기왓장으로 덮여 있고, ‘형설 출판사’는 조그마한 문패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마당이 있는 가정집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폭이 1미터 정도밖엔 되지 않는 좁디좁은 골목길은 유럽에나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여기 통의동 백송북 1길로 들어서면, 굽이굽이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미로를 걷는 기분으로 몇 발걸음 옮기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정말 오래전 기억들이다. 맞다. 예전에는 이렇게 집집마다 ‘초인종’(기계식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 아닌)이 달려 있었고, 문 옆에는 ‘우유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도둑을 막느라 담벼락 위엔 유리 조각을 이렇게 꽂아놨었고, 꼬챙이 같은 철조망을 창문에 두르기도 했었다. 아직 이런 동네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이러한 주택가에 사무실을 마련한 목련원(황두진 건축사 사무소), 헥사콤(디자이너 정병익의 사무실) 등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동네에서 일을 한다면, 아마 내 기사는 한 편의 절창이 되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적어도 주택에서 자라온 아이의 감성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문이 바로 이곳 영추문이다. 그리고 통의동은 그러한 영추문을 바로 앞에 두고 서쪽으로는 인왕산을, 북쪽으로는 북악산을 끼고 잡고 있다. 그리고 감나무와 모과나무가 외부 사람들의 손길을 타지 않고 잘 매달려 있다. 인사동, 삼청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제는 가회동까지 한옥보존지구에서 해제되어버렸다. 그러니 이제 서울 사대문의 중심에서 오로지 개발되지 않고 남은 곳은 통의동, 이 동네뿐이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죠? 신분증 좀 보여주십시오.” 통의동을 걷다 보면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종종 ‘신분 확인’을 요구한다. 아마 그래서 이 동네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이 동네는 파리 새끼 한 마리 들끓지 않는다고 한다. (청와대 인근이라 살충을 철저히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통의동에선 마음 놓고 산책해도 된다. 사람들에게 치일 일도, 지독한 모기에게 뜯길 일도 없는 것이다.


상수역 2번 출구에 위치한 카페 룸엔드(Roomand)를 보면서, 이게 홍대 근처니까 가능한 일이지 싶었다. 오래된 가정집을 흠잡을 데 없는 카페로 개조한 이 집은 카페라는 공간이 지닐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었던 거다. 그리고 이건, 어설픈 리노베이션을 거쳐 엉성한 음식을 내놓기 마련인 양평의 가정식(?) 오리 고깃집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개별 용도였던 가정집을 상업 용도의 매장으로 변경할 때 최상의 모습을, 바야흐로 이 카페는 구현해내고 있었다. 사람이 들끓지 않는 한적함, 집의 용도를 사용한 편안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집의 가치에서 조금은 떨어져 나온 세련됨과 모던함이 이 카페엔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카페는 홍대 앞(우리가 늘 ‘홍대 앞’이라고 표현하는 홍대 앞 놀이터 근방과 전철역 부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홍대 앞엔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시끄러운 커피빈과 스타벅스가 존재하지, 이렇게 멋진 카페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홍대 앞을 상징하는 것이 젊음이라면 실제 홍대 앞은 젊음의 아름답지 않은 요소들만 뽑아놓은 장소 같다. 젊음의 독특한 상상력 대신 흥청망청거림으로, 젊음의 무한한 에너지 대신 섣부른 열정 뒤의 배설물들로 칠갑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홍대 앞으로 발길도 돌리기 싫어진 지는 꽤 됐다.

대신에 나는 ‘홍대 앞’이라는 대명사가 갖는 젊음의 발랄한 욕구를 상수동에서 찾는다. 정확히 말해 상수역을 기준으로 합정역 방면으로 나아가는 서교동과, 오른쪽으로 나 있는 상수동을 싸잡아 즐기는 것이다. (극동방송국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두 덩이 동네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일단 극동방송국 방면부터 훑어보자. 자고로 이쪽 동네는 연애 고수들이 즐겨 찾는 최고의 데이트 코스가 있다! (이걸 그대로 답습해서 실패하는 사람을 본 적 없으니 맘껏 따라 해도 좋다.) 북카페 ‘토끼의 지혜’ 맞은편 골목으로 쭉 들어서면 365일 사람이 줄 서 있는 일본 라면집을 지나 영문구 식품 앞에 당도한다. 홍익초등학교를 졸업한 자로서 얘기하자면, 이 가게는 정말 오래됐다. 학교 앞 문방구가 상징하는 여러 가지 추억들이 있듯, 이 가게는 학교 앞 가게의 정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러니 이곳에 들러 추억의 불량식품 정도 사 먹어도 좋겠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널찍한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 살롱(Caf?Salon)이 나온다. 이 집은 집인지 카페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주택식 카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카페와 가정집의 경계를 나누자면, 오히려 후자 쪽에 가까운 편이다.) 잠시 들러 차 한잔 해도 좋고, 아니면 그 길 그대로 올라가면 된다. 몇 걸음 더 걸으면 왼편으로 ‘와우 어린이공원’이 보이는데 그쪽으로 방향을 틀자. 아마 서울 어디엘 가도 이런 느낌의 (한쪽 벽면이 그럴싸한 그래피티로 채워진) 공원은 찾기 힘들 것이다. 뜨내기들의 상징 격인 홍대 앞 놀이터와는 달리, 이 공원은 딱 요 근방 몇몇 주민들만의 아지트다.

공원을 옆으로 끼고 올라가는 계단은 더 예쁘다. 밤에 가면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정말 달콤한 분위기를 양산해낸다. 노란 가로등과 좁은 계단, 그리고 아직 개발이 전혀 되지 않은 오래된 집들까지. 이곳은 정말 홍대 앞이라고 볼 수가 없다. 계단을 다 오르면 서강초등학교 앞. 즉, 홍대 뒷문이 나온다. 홍대 안으로 들어가 인문사회관 A동 앞 벤치에 잠시 착석하자. 캔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자판기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캔 음료 마시면서 몇 마디 나누고 그 길을 그대로 쭉 돌면 홍대 정문이다. 자, 콧구멍으로 느껴지는 감회가 어떠한가. 데이트 코스란 바로 이런 거다. 반짝이는 자가용을 타고서, 양수리로 헤이리로 내지르는 것만이 데이트는 아니라는 거다. 연애의 성공 확률(그리고 연애가 빚어내는 추억과 낭만의 부피)로 보자면 이쪽이 훨씬 승자다.

에디터_이지영 사진_김린용 자료출처_아레나코리아

'Life > Free Thin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만들었던 휴대폰들..  (2) 2009.02.08
가보고 싶은 카페, 식당  (0) 2008.11.19
가족  (4) 2008.11.06
언어  (0) 2008.11.06
아이 그림을 읽으면 마음이 보인다  (0) 2008.10.27